삶의 지도 (Maps of Life)

Nov 12, 2023

너는 어떤 사람이야?

면접이나, 소개팅이나, 사람을 만나면 종종 던져지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우리는 다양한 관점과 수준에 따라 대답할 수 있다. 나는 “초기 기억”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초기 기억

현대 심리학에서 “기억”은 중요하게 취급받는다. 심리학자 알프레트 아들러는 “초기 기억(early memory)”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생후 6개월부터 만 8세까지 선별된 기억들이 개인의 생활양식, 잘못된 신념, 사회적 상호작용, 행동목표에 대한 의미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나의 어릴 적 생생한 기억 중 하나는 6~7살 때의 기억이다.
가족 여행으로 큰 공원을 갔는데 엄청난 거리를 걸었다. 어린 나이에 불평하고 업어달라고 찡찡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꿋꿋이 부모님을 따라 걸어갔다. 결국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고 기억은 여기까지이다. 부모님 말씀에 의하면 말레이시아의 키나발루 국립공원에 갔을 때였고 가이드에 착오가 있어 엄청나게 고생했다고 한다.

이 기억을 되뇌길 때마다 왠지 모르게 마음속에 불굴의 힘이 솟아난다.
“쉽게 단념하지 아니하고 끈질기게 견디어 나간다”는 정신이 내 머릿속에 깊게 자리 잡은 것 같다.
이렇게, 나는 끈기 있는 사람으로 성장해 왔다.

나의 끈기

이후 많은 경험이 이에 연결되는듯 하다.

  • 초등학생 때 밤이 되어 자야 하지만 학교 숙제를 꼭 해야 한다며 울면서 숙제함
  • 악착같이 장거리를 뚸어서, 체육대회에 항상 반에서 장거리 뛰기 선수로 선발됨
  • 중학생 때 시골에서 낫질하다 실수로 검지 손가락을 베고, 반마취 상태로 7바늘을 꿰매야 했음. 아팠지만 이 악물고 버텼고 의사 선생님이 많이 칭찬해 줬음
  • 고등학생 때 검정고시를 치르고, 혼자서 1년 동안 도서관을 다니며 수능 공부함
  • 대학생 때 악명 높은 전공 과제들을 밤새워 가며 완수하여 모두 제출함
  • 스타트업 다니면서 3개월 동안 퇴근 후 취준 스터디를 진행하고 입사함

이러한 경험들은 나의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조각들이다.
이 조각들은 내 성장의 원동력이 되며, 삶의 지도의 이정표가 되었다.

현업에서의 끈기

어려운 상황에서 업무 목표를 지속적으로 추구하며, 좌절하지 않고 목표를 지속적으로 추구해 가는 것바른채용진흥원의 역량사전에서 정의하는 끈기의 역량이다.

현업은 마치 야생의 정글과 같다. 무엇이 정답일지 모르고, 어떻게 업무를 처리해야 할지 갈피를 잡기 어렵다. 일에 치여 때로는 내가 해결해야 할 진짜 문제를 잊어버리기도 하다. 이러한 정글에서 끈기의 역량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내가 좋아하는 카카오의 문화 중 하나는 이렇게 말한다.

무슨 일이든 본질만 남기고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봅니다. Back to Basic.

이 문화는 팀의 목표와 나의 업무에 대해 명확하게 생각하게 한다. 복잡한 상황 속에도 핵심을 파악하고 문제의 본질에 집중함으로써, 지속적으로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내 커리어의 시작인 브런치의 환경은 열악했다. Spring, Velocity, jQuery, Grunt, Handlebars, ES3 … 온통 생소한 기술셋이고 개발 히스토리가 잘 보존되지 못했다. 새로 이직해 온 FE 동료와 함께, 둘이 어질러진 시스템을 점진적으로 정돈해가야 했다. 업무 하나하나를 처리하는 과정이 맨땅에 헤딩하는 듯 했다.

이대로 물경력이 쌓이는가 회의감이 들기도 했지만, 동료를 믿고, 해결해야 할 문제에 집중하며 도전하기를 다짐했다. 그렇게 무법지대에서 새로운 컨벤션을 정립하고, 리소스를 정리하며, 번들링을 자동화하고, 테스트 코드를 덕지덕지 붙였다. 모든 시도가 성공적이진 않았지만, 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Webpack, ES6, Cypress, Vite, Svelte … 모던한 기술셋 환경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렇게 레거시 환경을 개선한 경험을 2022 if-kakao에서 공유하게 되었고, 브런치는 FE팀에서 Svelte를 선도적으로 사용하는 서비스가 되었다.

개인적으로 성장에 대한 깨달음을 회고하기도 했다.
앞으로 이 “끈기”가 내 삶의 지도(Maps of Life)에서 어떤 길을 열어줄지 더욱 기대된다.

P.S

체질적인 특성이 “끈기”와 연결되는 점도 흥미롭다.
나는 수양체질으로, 신장(방광)이 강하다. 독서실이나 PC방, 술자리에서 화장실을 자주 가지 않고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친구들이 자주 화장실을 가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자연스레 나는 한번 앉으면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고, 어떤 일이든 끈질기게 붙들 수 있었던 것 같다.